노동과 법2009. 12. 8. 10:33






촉의 재갈량이 출사표를 던지고 마지막 북벌을 나설 때..
위(魏)를 몰아내고 한(漢)의 후예가 삼국을 통일하기를 바라던 사람들은 그에게 마지막 희망을 걸었었다.

당과 신라의 대군이 계백의 5천을 전멸시키고 사비성에 들이닥쳤을 때..
많은 백제의 사람들은 주변의 큰 성들에 아직 수십만의 백제군이 있다는 희망을 가졌다고 한다.

조선시대 세조의 찬탈을 슬퍼하며 단종을 왕으로 모시고 싶었던 사람들은..
명나라 사신을 맞는 연회에서 칼을 차고 세조 옆에 설 수 있을 줄 알았다고 한다.

남한산성에 갇혀 청군에 저항하던 선조와 신하들은..
의주의 임경업과 삼남의 많은 병력들이 곧 구원하러 올 것이라는 희망을 가졌었다고 한다.

그보다는 조금 가까운 옛날, 박정희가 한강 다리를 막고 해병대를 동원해 서울을 장악했을 때..
전방에 포진해 있던 압도적 병력을 가진 1군이 박정희를 진압해 줄 것이란 희망에 매달렸던 사람들이 있었다.

전두환이 서울 병력과 공수여단들을 몰아 서울을 장악했을 때..
서울 주변의 나머지 9공수여단이 전두환을 진압해 줄 것이라 믿었던 사람들이 있었다.

위의 희망들은 당시로서는 상당히 현실적인 희망이었다.
그러나 역사는 뒤틀린채 흘러갔고 지금은 '만약'이라는 부질없는 가정으로만 남아있다.

경험으로 익힌 다른 기억도 물론 가지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이 국회에서 의결됐을 때 그것이 '흐름'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있었지만..
우리가 들었던 촛불은 우리 손으로 '흐름'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냈었다.

하지만 그 기억이 벅차면서도 아픈 이유는
그런 경험이 말도 안되게 드문 일이라는 것, 그 경험을 지켜내지 못했다는 것 때문이다.

지금 한나라당과 정부, 한노총, 경총이 복수노조 2년 6개월 유예, 전임자 Time-off 실시 6개월 준비기간을 야합한 상황에서..
민주당과 민노당, 민주노총이 무엇인가 해줄 것을..
이 파렴치한 선택이 '흐름'이 아니란 것을 보여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지만

결국 이렇게 흘러가고 마는 것이 아닐까 하는 맥없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들이 이런 소망을 이뤄 준 기특했던 기억이 내겐 없기 때문이다.

야합과 때맞춰 무너져주는 센스를 보인 철도노조의 모습도
결국 지금의 "흐름"을 돌이킬 수 없음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지..

수십년 전 일본 노동운동이 갔던 길을 절묘하게 뒤 밟아 가는 것만 같아 쓸쓸하다.


Posted by 無逸
노동과 법2009. 12. 5. 16:16

2006년 9월 11일 상황과 무엇이 다른가..

이기적 욕망과 집착 이외에 무엇이 남아있나..
그것이 어떻게 대의와 명분으로 포장될 수 있는가..

옳은 것 보다는 돈 몇 푼이 값진 파렴치한 시대..
옳은 것에 대한 고민이 웃긴 짓으로 무시되는 시대..
이런 합의문에 이름 석자 올리는 것이 부끄럽지 않은 시대..




전임자․복수노조 제도개선 관련 노사정 합의문


 오늘 노사정 대표는 노조 전임자 급여와 복수노조 규제 문제에 대해 적인 합의를 이루었습니다. 수차례의 협의와 토론 끝에 일궈낸 이번 합의는 노사 모두 각자의 이해관계 고리에서 벗어나 지난 13년간 미루어왔던 숙제를 해결한, 우리나라 노사관계 발전의 큰 전환점입니다.

 특히, 이번 합의는 어려운 경제여건을 타개할 출발점이 ‘노사관계 선진화’라는 점에 인식을 같이하고, 노사정 모두가 우리 노사관계의 현실을 고려하여 고심 끝에 내린 결단입니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세계 어느 국가와 비교해도 손색없는 선진 노사관계의 틀을 갖추게 될 것이며, 진일보한 노사관계는 경제사회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이번 합의를 계기로 우리의 노동운동은 변화될 것입니다. 경영의 투명성도 한층 높아질 것입니다. 이제 노사정은 온 국민의 열망이자 당면 현안인 일자리 창출을 위해 힘을 모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번 합의가 새로운 노사관계를 이끌어 내고, 21세기 선진 일류국가로 도약하는데 중요한 디딤돌이 될 것으로 기대하면서, 노사정 합의 사항이 산업현장에 연착륙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입니다.

 앞으로, 노사정은 합의 이행에 필요한 법 개정 등 제반조치가 조속한 시일내에 마무리 될 수 있도록 적극 협력할 것이며, 합의정신이 산업현장 전반로 확산되어 건강한 노사문화가 정착되도록 다함께 노력할 것입니다.



노사정 합의사항

 가. 노동조합 전임자 급여금지 제도와 관련하여, 중소기업의 합리적인 노조활동이 유지될 수 있도록 노사 교섭․협의, 고충처리, 산업전 등 관련 활동에 대해 사업장 규모별로 적정한 수준의 근로시간 면제제도를 운영할 수 있도록 한다.

   ○ 위와 관련된 구체적인 세부사항은 노사정이 실태조사 등을 토대로 긴밀한 협의를 통해 합리적인 기준을 마련, 시행령에 반영하고 준비기간을 거쳐 2010년 7월부터 시행한다.

 나. 근로자의 단결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해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 설립
규제는 폐지하되, 이에 따라 야기될 수 있는 부작용과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교섭창구는 단일화한다.

   ○
교섭창구 단일화를 위한 구체적인 방법․절차, 교섭 비용 증방안 등을 노사정이 협의하여 시행령에 반영하고, 산업현장 교육․지도 등을 위한 충분한 준비기간을 두고 2012년 7월부터 시행한다.

 다. 복수노조 교섭단위는 사업 또는 사업장으로 한다.

   ○ 소수 노조에 대한
불합리한 차별을 방지하기 위해 교섭대표 노조에게 공정대표 의무를 부여한다.

2009. 12.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  장 석춘
한 국 경 영 자 총 협 회 회장  이 수영
노          동          부    장관  임 태희


Posted by 無逸
노동과 법2008. 12. 4. 19:03

법률을 개정하고 제도를 만들어나가는 데에
국민이 직접 나서서 자기 생각을 관철시키려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어쩌면 대의제 민주주의 사상이 밑에 감추고 있는 의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요즘 인터넷을 통해 작은 개인의 생각이 여론이 되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대세는 대의제 민주주의이다.
국회의원들이 "국민들이 바라는 것"을 알아서 정하고 법으로 만든다.
모두 다 알아서 한다니 퍽 기특한 일이겠지만 그들이 아는 것은 어디까지이고, 알고 싶은 것은 어디까지일까?
 
요즘 노동계와 경영계가 골몰하고 있는 굵직한 문제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복수노조 문제와 전임자 문제이다.
이게 왜 엮여 있어야하는가를 말하려면 또다른 설명이 필요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문제가 엮여 있으며, 우리들이 모르는 사이에 관련된 논의가 진행되고 있고,
누군가는 이 내용을 법으로 만들려고 한다는 것이다.
 
복수노조 문제와 전임자 문제는 2006년 노사정 대표자회의에서 3년 동안 시행이 미루어졌다.
어느새 2년이 흘러가고 2010년이 코 앞에 다가오자 노동부도, 노동계, 경영계 모두 다시 우왕좌왕 서두르고 있는 것이다.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안에 설치된 노사관계선진화위원회에서
12월 11일부터 본격적으로 복수노조 문제와 전임자 문제를 논의하기 시작할 것이라고 한다. 
 
노사의 대표라는 한국노총과 경영계의 대표라는 경총과 상의, 정부 관료... 이렇게 세 주체가 합의하면
국회가 법으로 만들고 시행한다고 하는데,
이들이 국민을 대표해서 "법"이 될 내용을 정할 수 있는 권한은 누가 부여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이 세상에 중요하지 않은 문제가 없지만,
어두운 경제상황과 국제정세와 정치권의 웃긴 모습에 가리워서,
우리나라 노동과 노동법의 장래를 바꾸어 놓을 엄청난 법률 개정이 '슬쩍'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건 아니지 않은가.

국민들은 2006년 9월 11일의 어이 없는 "3년 유예"를
뉴스 진행자가 전해주는 말을 듣고 '그렇구나...' 했을 뿐이다.
이게 9.11 사태이지 않은가.

그 때 아무도 우리를 설득하려 하지도 않았다.
우리는 설득하거나 설명할 필요도 없는 구경꾼이었을 뿐이다.
 
복수노조 허용 문제와 전임자 급여지급 금지 문제가 어떻게 논의되고 있는지 
정신 똑바로 차리고 바라봐야한다.
보려고 하면 볼거리는 어디에든 널려있다.


Posted by 無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