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12. 12. 17:56


외부 출판사에서 출간하는 첫 책이 나왔다.

머릿속에 맴돌던 내용을 박사학위 논문을 쓰면서 정리했고,

논문에는 어울리지 않았지만 해설서에는 필요한 내용을 추가했다.


나름 힘들고 긴 작업시간이었고, 

탈고한 후에는 두근거리면서 기다렸는데

나오고 나니 덤덤


누구보다 응원해주고 지원해준 가족들 덕이다.

표지 날개에 주연이가 그린 캐리커처를 넣을 수 있었던 것도 너무 즐겁다.


그리고 그렇게 열심히 교정을 봤는데

예상대로

처음 펼쳐본 쪽에 오타가!!

역기 기대에 어긋나지 않아.


책을 낼 수 있게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머리말]


  노동법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가슴에 이상(理想)의 노동법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는, 때로는 괴로움을 때로는 현실 노동법에 대한 치열한 해석 욕구를 동시에 발현시키는 에너지입니다. 이 에너지가 누적되어 임계점에 이르게 될 때 공부하는 사람은 새로운 입법론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2010년 1월 1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 큰 폭으로 개정됐습니다. 이상의 노동법과 더 다른 쪽을 향해 직선으로 방향을 잡은 현실 노동법에 직면해야 했습니다. 2010년 이후의 단체교섭법은 오랜 시간 공부하고 기도하면서 그려온 아름답고 완결된 법전의 체계와 너무 다릅니다. 게다가 그나마 주어진 조문의 내용 및 체계와도 맞지 않는 해석론들이 이미 화석처럼 딱딱하게 자리 잡아 우리의 단체교섭 제도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조문들과 해석론들이 과연 공동체 구성원들에 대한 방향제시와 분쟁해결 기준이 될 수 있을지 혼란스러웠습니다. 눈앞에 덩그러니 놓인 현실의 단체교섭 관련 조문들을 이성적으로 풀이하고 납득할 만하게 적용되도록 하려면, 법전 전체를 아우르는 안목과 노동법 및 노사관계의 역사적 흐름을 꿰뚫는 식견에 기초해서 상식이나 관행에 사로잡히지 않는 새로운 해석론을 만들어내야 했습니다. 올바른 해석론은 올바른 입법론으로 이어지게 되므로 이러한 작업은 더욱 절실했습니다. 저와 같이 모자란 사람이 쉽사리 할 수 없는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어설픈 해석 욕구가 치열하게 올라왔지만 두려운 마음으로 누르면서 여러 해 동안 고민하고 정리했습니다. 그 과정은 2014년 모교 은사이신 하경효 교수님의 지도를 받아 박사학위 논문을 쓰면서 한 매듭을 지을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더디고 부족한 제자를 오랜 시간 인내하고 기다려주셨습니다. 턱없이 부족한 문장들을 들고 늦은 밤 찾아온 제자에게 따뜻한 차를 사주시면서 타이르고 가르쳐주셨던 시간들을 잊을 수 없습니다. 학위 논문을 쓰면서 정리했던 내용을 더 다듬고, 독백이 아닌 대화를 염두에 두면서 생략했던 내용들을 추가했습니다. 입법론까지 너무 많이 나아가지 않고 해석론으로서 충실하고자 했습니다. “단체교섭은 서로를 위해 보장된 대화”라는 명제가 참이 되도록 하기 위해 한 방향을 향해 논리를 집중했습니다. 진영 논리에서 벗어나고자 애썼습니다. 완결된 체계라고 하기에는 아직 한계가 분명해 보입니다. 하지만 이 작은 책자가 논쟁의 밀알이 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습니다. 편안하고 재미있게 읽어주신다면 정말 행복하겠습니다.


  공부의 한 매듭을 만들면서, 너무도 과분한 가르침을 넘치게 주셨던 큰 산 같은 모교 선생님들, 자랑스러운 민사법 전공 선배님들과 동기와 후배들, 글을 통해 가르침을 주신 학계의 여러 선생님들, 실무에 눈을 뜨게 해주신 한국경영자총협회의 선배님들과 동료들, 무수한 현실의 난제들에 대해 함께 이야기 나눠주신 현장의 노사 실무자분들을 기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 공부하는 남편을 항상 지지해준 아내 순영, 아빠에게 늘 힘을 주는 서연과 주연, 그리고 부모님과 가족들에게 사랑과 고마움을 전합니다. 느닷없는 출판 제의를 수락하시고 정성스레 책을 만들어주신 신조사에도 깊은 감사 말씀을 드립니다.


2017년 11월
이 준 희

Posted by 無逸
노동과 법2009. 12. 12. 23:33


  현행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부칙 제5조는 2010년 1월 1일에 사업 또는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 설립을 전면 허용하는 것으로 예정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노․사․정은 단체교섭창구 단일화를 의무화할 것인지, 교섭창구를 단일화 한다면 어떠한 방법으로 할 것인지 여부를 두고 여전히 공방을 벌이고 있다. 12월 4일에 노동부와 한국노총, 한국경총이 밀실합의를 한 이후에도 이 문제에 대한 공방은 여전하다. 노동부가 새로운 3단계 단일화 방안(자율단일화>과반수노조대표>자율적 교섭단 구성)을 들고 나왔다는 것을 빼면, 노동계는 단일화를 부인하고, 경영계는 다수대표제를 주장하고 있는 구도에는 변함이 없다.

  그러나 단체교섭창구 단일화에 대한 논쟁은 단일화의 방법에 치중되어 있고, 과연 교섭창구를 단일화 하는 것이 타당한가 하는 단체교섭창구 단일화 자체의 정당성 문제에 대해서는 논의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단체교섭이라는 기본권 행사에 있어서 교섭창구를 단일화 하라는, 즉 대표가 되지 못한 자에 대해서는 기본권의 행사를 포기하라는 요구가 현행 헌법과 노동법 체계 내에서 가능한 것인가에 대한 논쟁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채 기술적인 부분만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의문인 동시에 유감이다. 

  단체교섭창구 단일화에 대한 논란을 자세히 살펴보면 사업장 내 노사관계의 혼란이나 노동조합 사이의 또는 노동조합과 사용자 사이의 갈등이 우려된다는 문제제기만 되풀이 되며 제기되고 있을 뿐, 헌법상 “근로자”에게 보장된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의 제한 내지 침해 문제는 소흘히 다루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즉 초보적인 경제논리가 기본권과 법적 권리의 문제를 압도하고 있는 형국이다. 절차의 간편함과 제도 운용의 효율성을 말하기 이전에 만들고자 하는 제도의 타당성이나 근거가 법질서 전체의 관점에서 검토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헌법상 부여된 단체교섭권을 강제로 위임하도록 하는 법정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는 단체교섭권의 법적성질에 대한 논의로부터 정당성 검토가 시작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그리고 단체교섭권의 법적성질은 독자적으로 논의되기 보다는 단체협약의 법적성질 문제와 결부되어 판단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영희, ‘단체교섭권의 법적성질과 문제’, 「노동법과 현대법의 제문제(심태식박사화갑기념)」, 1983, 42쪽 이하)에서, 단체교섭창구 단일화는 필연적으로 단체협약의 통합을 가져온다는 점에서 단체협약의 본질론이 그 논의의 첫 단계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검토는 단체협약 체결권을 행사하게 될 복수노조 하에서의 교섭대표노조 또는 교섭대표단이 갖는 대표권의 정당성 기초에 대한 논의가 될 수도 있다.

  우선 단체협약이 협약체결 당사자 사이의 계약 해당한다고 보는 제3자를 위한 계약설, 대리설, 단체설, 집단적 규범계약설 등에 따를 경우 과반수대표제에 따라 단체교섭창구를 단일화 하도록 법률로써 강제하는 것은 법률에 의해 자유롭게 계약을 체결할 수 있는 권리를 제한하는 것이 된다. 현재 민법상 전형계약 중에는 반드시 대표를 뽑아야만 계약을 체결할 수 있는 다수당사자 사이의 법률관계가 예정되어 있지는 않은 것으로 보이고 사인간의 계약 체결을 과반수대표제에 의해 법률로 제한하는 사례를 발견하기도 쉽지 않다(미국식 배타적교섭대표제도는 조합원만이 아닌 전체 근로자의 대표를 뽑는 절차이므로 이러한 문제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다). 우리 헌법은 제37조 제2항에서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개별 기업단위의 단체교섭 문제가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의 문제라고 볼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또한 제한하는 경우에도 본질적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고 하고 있는데 계약 당사자 일방의 계약 내용 결정의 자유가 완전히 배제되는 것을 본질적 내용의 침해가 없다고 볼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따라서 단체협약의 법적성질에 관하여 계약설을 따를 경우 과반수대표제에 의한 단체교섭창구 단일화는 논리적으로 허용될 수 없다. 다만 비례대표제나 공동교섭단 구성을 통한 교섭창구 단일화는 계약의 자유 침해의 정도가 완전한 배제에 이르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허용될 수 있는 여지는 있을 것으로 본다.

  다음으로 단체협약을 법규범으로 보는 견해에 따를 경우 교섭창구 단일화를 강제하는 것이 허용되는가 하는 것을 검토하려고 한다. 수권의 의미에 대한 차이를 일단 부각시키지 않고 형성되어 있는 단체협약의 법규범에 해당한다고 볼 것인가에 대해서만 헌법수권설과 법률수권설이 있다는 전제로 설명해본다. 우선 헌법수권설에 의할 경우 헌법 제33조에 의해 직접 근로자에게 부여되어 있는 단체교섭권을 근로자 자신이 선택한 노동조합이 아닌 다른 노동조합이 행사할 수 있도록 법률로 강제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 단체협약 체결 문제가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의 문제라고 보기 어렵다는 점은 계약설에 대한 부분에서 설명한 바와 마찬가지이며, 여기에 더하여 헌법상 직접 부여된 권한 행사를 법률로써 배제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법률수권설에 의할 경우 당사자의 자치입법권이 법률에 의해 부여된 것으로 볼 수 있으므로(지방자치법 제22조는 “지방자치단체는 법령의 범위 안에서 그 사무에 관하여 조례를 제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법률로 그러한 자치입법권을 제한하는 것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 경우에도 단체협약 체결 문제가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의 문제라고 볼 수 있는지,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는 기준을 충족시킬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이승욱, ‘복수노조와 교섭창구단일화’, 「법과 노동의 소통Ⅲ」(서울대 노동법연구회 2009년, 가을학술발표회), 2009, 13쪽은 심지어 단체교섭창구 단일화의 의미는 단체교섭‘권’을 단일화시켜 행사하여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까지 설명하고 있는데 이러한 견해의 배경이나 논리적 근거는 납득하기 어렵다).

  결론적으로 현재 우리나라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소위 단체교섭창구 단일화 방안은 단체교섭권 및 단체협약의 본질을 중요시하는 관점에서 볼 때 인정하기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노동조합이 조직된 근로자의 대표조직으로서 헌법상 근거에 따라 행사하는 단체교섭권을 창구를 단일화하여 행사하라고 할 수 있다는 발상을 떠올린 것부터가 사실 놀라운 발상이다. 이탈리아의 RSU 같은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외국에 그러한 예가 있다고 그것이 당연히 우리나라에서도 인정될 수 있다고 볼 수는 없는 것 아니겠는가.


# 2009년 11월 1일, 대학원에서 발표한 발제문을 일부 수정했습니다.


Posted by 無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