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과 법2009. 12. 10. 16:47



  보통 단체협약의 법적성질 문제에 대해 설명할 때 논의의 대상이 되는 부분을 규범적 부분에 한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단체협약을 규범적 부분과 채무적 부분으로 나누면서 규범적 부분에 대해서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하 ‘노조법’) 제33조에 의해 제1항의 강행적 효력과 제2항의 직접적 효력 즉 규범적 효력이 인정되고 있고, 채무적 부분은 사용자와 노동조합 사이의 관계에 관한 부분으로서 협약 당사자 사이에 계약으로서의 효력이 인정된다고 보면서 단체협약의 규범적 효력이 인정된다고 보는 규범적 부분에 국한해서 단체협약의 법적성질 논의를 진행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에 대해서는 단체협약은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체제 유지적 보편적 가치를 가지고 있는 단결권의 실현의 결과물로서 가치적, 이념적 평가가 요구된다고 하면서 단체협약은 곧 법규범으로 인식되어야 하고, 법규범으로 인식되는 한 단체협약의 규범적 효력은 채무적 부분에 대해서도 인정되어야 한다(유혜경, ‘단체협약법의 이론적 기초에 관한 연구’, 「노동법학」 제24호, 2007, 82쪽 이하)고 보는 반론이 있다. 이 견해에 따를 경우 단체협약의 법적성질론의 논의 대상은 규범적 부분, 채무적 부분을 막론하고 단체협약 전체가 된다.

  지배적인 견해가 단체협약을 규범적 부분과 채무적 부분으로 나누어 규범적 부분에 대해 단체협약의 법적성질 논의를 집중하는 것은, 단체협약 중 협약 당사자 사이의 문제들에 대하여 정한 부분이 단체협약 체결 당사자에게 직접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은 굳이 별도의 이론을 구성하지 않고 ‘당사자 사이의 합의’로만 보아도 쉽게 설명이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협약체결 당사자가 아닌 개별 조합원인 근로자나 사용자단체에 속한 사용자가 단체협약의 직접적․강행적 효력의 규율 내에 들어가게 되는 것에 대하여는 특별한 이론구성이 필요했다. Lotmar 교수나 Sinzheimer 교수 등이 독일의 단체협약령 이전에 단체협약의 규범적 효력을 인정하기 위해 대리설과 단체설 등을 주장할 때 규범적 효력이 인정되는 것으로 보기 위해 이론구성을 시도한 영역도 협약 당사자가 아닌 조합원인 근로자와 개별 사용자에게 영향을 미치는 부분이었다.

  그러나 규범적 부분과 채무적 부분을 구별 짓게 되는 것이 규범적 효력을 인정하기 위한 이론구성이 필요한 부분인가 아닌가 하는 것에 있다면 모르되, 이미 하나의 단체협약으로 형성된 이후에도 적용상 효력에 있어서 단체협약의 각 부분이 차이를 가진다고 보는 것은 의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노조법 제33조를 근거로 “근로조건 기타 근로자의 대우에 관하여 정한 부분”을 규범적 부분이라고 보고 있다(김유성, 「노동법Ⅱ」, 1998, 166쪽; 김형배, 「노동법」, 2009, 제759쪽). 한편 독일 단체협약법(Tarifvertragsgesetz) 제1조 제1항과 제4조 제1항에 따르면 단체협약 중 “근로관계의 내용, 체결, 종료와 경영상 및 경영조직법상의 문제를 규율(ordnen)하는 부분”이 법규범(Rechtsnormen)에 해당한다고 하면서 규범적 효력을 인정하고 있다. 즉 독일에서는 “근로조건 기타 근로자의 대우에 관하여 정한 부분” 뿐만 아니라 경영상 및 경영조직법상의 문제를 규율하는 부분도 규범적 부분으로 인정되고 있다(Brox/Rüther/Henssler, 「Arbeitsrecht」, 2004, 222쪽 이하). 단체협약의 내용 중 법률이 명시적으로 기준의 효력을 부여한 부분을 규범적 부분이라고 볼 때, 각 나라의 법률이 규정하는 규범적 부분의 영역이 늘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입법정책정인 관점에 따라 좌우되는 문제인 것이다. 그리고 뒤에 설명하겠지만 독일에서의 이와 같은 규정의 최초 입법 취지는 협약 당사자가 아닌 조합원과 사용자에 대하여 단체협약이 직접적 효력과 강행적 효력을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따라서 입법의 목적은 규범적 효력을 이론적으로 논증하기 어려운 부분에 대한 근거지움에 있을 뿐 그 이외의 부분이 규범적 효력을 가질 수 없다고 밝히기 위한 의도를 가진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단체협약의 규범적 효력을 인정함에 있어서는 채무적 부분을 규범적 부분과 다르게 취급해야할 필연적 근거는 없다고 생각된다. 헌법 제33조에 의해 근로자의 헌법상 권리로 인정된 단체교섭권의 행사를 통해 만들어진 결과물인 단체협약에 대하여 특별한 근거 없이 특정부분의 효력을 다른 부분의 효력보다 아래에 있는 것으로 판단하는 것은 타당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단체협약의 규범적 효력을 규정한 독일 단체협약법이나 우리 노조법 규정이 소위 규범적 부분을 지정하여 규범적 효력을 인정한 것은 나머지 부분에 대하여 계약적 효력만 인정하면 된다는 취지가 아니라 해석적 방법만으로 규범적 효력을 인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법률로 규정하는 방법을 택한 것일 뿐이라는 것을 인정한다면, 협약체결 당사자 간에 자치적으로 합의하여 규범으로 삼은 부분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생길 이유가 없는 채무적 부분에 대하여 규범적 효력을 부인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단체협약의 규범적 효력이 “근로조건 기타 근로자의 대우에 관한 사항”에 대해서만 한정적으로 인정된다는 통설적 주장은 타당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소위 채무적 부분은 취업규칙이나 근로계약 등과 저촉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

  다시 말하면 단체협약의 모든 부분은 규범적 부분인지 채무적 부분인지 나눌 필요 없이 전체가 모두 당사자의 사적자치에 의해 형성된 부분사회에 적용되는 자치규범으로서 파악되어야 하며, 그 효력도 단체협약의 모든 규정이 원칙적으로 동일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 대학원 세미나 발제문에 썼던 내용..
더 다듬어져야겠지..



Posted by 無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