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과 법2009. 12. 23. 10:18




1. 채용 과정에서의 사용자의 질문권


  근로계약의 체결단계에서 당사자들은 계약의 성립과 실현에 중대한 영향을 줄 수 있는 결정적이거나, 특수한 사정에 관하여 상대방에게 알려야 할 신의칙상의 의무를 부담한다(김형배, 「민법학강의」 제5판, 2006, 1037쪽). 즉 계약체결 교섭의 사실적인 개시와 함께 근로자와 사용자는 각 상대방에 대하여 신의칙상 배려ㆍ조사ㆍ고지와 주의 등을 해야 할 행태의무를 진다. 이러한 의무를 위반할 경우 계약체결상의 과실책임을 지게 되며, 응모자와 사용자가 모두 근로계약체결과 관련하여 진실통지의무를 지게 된다(김형배, 「노동법」 신판 제3판, 2007, 223쪽). 그리고 이러한 통지의무에 상응하여 계약 당사자에게는 정당한 질문권이 인정된다.


2. 정당한 질문권의 범위

  사용자는 근로계약을 체결하기 위하여 필요한 근로자에 대한 정보를 수집할 수 있고, 이를 위하여 근로자에 대하여 질문을 할 수 있다. 물론 사용자의 질문권은 응모자의 「헌법」상 기본권인 인격권(제10조), 평등권(제11조),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제17조), 양심의 자유(제19조) 등을 침해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업무와 관련된 사항으로 제한되어야 한다(유성재, ‘하자있는 근로계약의 효력’, 중앙대 법학연구소 「법학논문집」 제23집 제1호, 1998, 210쪽). 업무와 전혀 무관한 사항에 대한 질문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하며, 이러한 질문에 대하여 근로자는 응답할 의무가 없다고 해야 한다. 국가인권위원회 「차별금지법」 권고법안 제11조(모집․채용상의 차별금지) 3호는“면접 시 직무와 무관한 질문을 하거나 채용시 성별 등을 기준으로 평가하는 행위”를 차별행위로서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근로자가 담당하게 될 업무를 완수하는 데에 반드시 필요한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에 대해 파악하기 위해 사용자가 관련 사항을 질문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로 인정되어야 할 것이다. 

3. 사용자의 적법한 질문에 대한 거짓 답변

  사용자의 적법한 범위 내에서 질문하였으나 근로자가 답하지 않거나 거짓으로 정보를 제공하여 그 근로자를 채용하게 된 경우, 사용자는 계약 체결상의 과실책임을 근거로 그 근로자와의 근로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대법원 판례 법리에 따르면 이 경우 징계해고도 가능하다고 한다(대법원 87다카2410; 대법원 88다카4918; 대법원 93누21521 등). 그러나 채용 이후에 근로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생긴 사정을 이유로 징계를 하는 것이 아닌 한, 이러한 사안에서 징계해고를 인정하는 것이 타당한지는 의문이다. 그리고 부적격한 근로자를 채용하게 되어 사용자가 손해를 입었다면 이로 인해 발생한 손해의 배상을 청구할 수 있을 것이다.

4. 사용자의 정당한 범위를 넘어선 질문에 대한 거짓 답변

  이와 반대로 사용자가 적법한 질문의 범위를 벗어난 질문을 한 경우에 채용 모집에 응한 자가 반드시 진실한 내용만을 답변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 학계에서 논의가 있다. 근로자가 거짓 정보를 제공하였다 하더라도 불이익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견해가 유력하다(유성재, 앞의 글, 210쪽). 가령 채용 단계에서 채용 모집에 응한 여성에게 사용자가 임신상태인지 여부를 질문하는 경우, 그 여성 근로자는 임신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임신하지 않았다고 거짓으로 답해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소극적 침묵의 정도를 넘어서 적극적으로 거짓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는지에 대하여 의문의 소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정당한 범위를 넘어선 질문에 대하여 불이익한 처분을 받을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진실을 고지하도록 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점에서 거짓 정보를 제공하였다 하더라도 불이익을 받아서는 안된다는 견해는 옳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임신 여부를 묻는 질문에 침묵하는 것은 채용 담당자나 사용자로 하여금 긍정의 표시로 받아들이도록 할 여지가 있으며, 그로 인해 채용 과정에서 불이익을 받게 될 수 있기 때문에 여성 근로자에게 소극적 침묵을 요구하는 것도 합리적인 기대 가능성이 없다고 보아야 한다.

  국내에서는 아직 유사한 사례를 찾기 어렵다. 하지만 유럽법원 판결 중에는 임신한 여성근로자의 진술 의무에 대해 판단한 사례가 발견된다. Tele Danmark A/S v. HK(Case C-109/00) 사례에서 유럽법원은 임신 여부는 회사가 채용시에 정당하게 행사할 수 있는 질문권의 범위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임신 했다는 사실을 채용시에 고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여성 근로자를 해고하는 것은 부당해고라고 판단하였다. 이 사건은 사용자인 Tele Danmark A/S가 Brandt Nielsen이 기간제 임시 근로자로 채용되는 것임을 알면서도 채용 과정에서 임신 사실을 고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해고한 사안이었다.



# 2007년 5월 대학원에서 발표했던 발제문 중 일부를 발췌하여 수정했습니다.
그래픽 자료는 경향신문 3월 6일자에서 인용했습니다.


Posted by 無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