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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1.16 그런데 왜 우리는 여기 있지? / 정영무
삶과 생각과 일2012. 1. 16. 11:14


한겨레의 아침햇발 칼럼을 읽다가 퍼옵니다.
정영무 선생님의 글을 늘 기다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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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과 입시가 폭력을 부추겨도
부모가 아이를 진정 성적표보다
아낀다면 비극은 덜할 것이다

    
                                                                                                                  » 정영무 논설위원 (2012. 1.10. 19:22)
   
 
새끼 낙타가 묻는다. 우리 발바닥은 왜 이리 크지? 그리고 등에 큰 혹은 왜 나 있지?
어미 낙타가 알려준다. 그것은 사막을 잘 가도록 한 것이야.


새끼 낙타는 묻는다. 그런데 왜 우리는 여기(동물원)에 있는 거야?


학교에서 일어나는 소동은 베르베르의 소설 <웃음>에 나오는 이 이야기에 많은 부분이 담겨 있다. 한창 팔팔할 시절의 아이들을 교실과 학원의 우리에 가둬놓고 성적으로 줄세우기를 하니 문제가 안 생길 수 없다. 청소년기는 누구나 혼란과 방황을 겪는 시기다. 존중과 배려를 잘 가르친다는 선진국에서도 학교폭력은 일어난다. 하물며 단속과 엄벌이 해답이 될 수 없다.


학교는 사회의 축소판이다. 우리 사회는 무한경쟁에 노출돼 있고 패자는 짓밟힌다. 살아있으되 유령처럼 쪽방과 고시원에 내팽개쳐진 비존재로 존재한다. 비존재의 나락은 기성세대는 물론 아이들에게도 불안과 공포와 차별의 대상이다. 세상이 그런데 학교만 온실처럼 남기를 바랄 수는 없다. 결국 비존재가 존재로 흡수될 때, 우리 사회가 최소한의 생존권과 존엄을 가질 때 학교폭력도 수그러들 것이다. 올해처럼 복지 민심이 팽창하고 그것을 구현할 정치적 계기가 존재하는 시기도 드물다. 지금의 아이들과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도 삶의 하한선을 반드시 구축해야 한다.


세상은 하루아침에 바꿀 수 없지만 부모는 변할 수 있다. 중고생 아이가 있는 집은 화내는 아빠, 잔소리하는 엄마가 지배하는 단절의 공간일 가능성이 크다. 아이를 위한다고 하지만 아이 자신보다 시험성적이란 결과물을 더 애지중지하기 때문이다. 학교폭력이나 학생들 문제로 상담을 하는 이들은 “부모들이 내 아이에게 이런 일이 벌어질 줄 상상도 못했다고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아무리 경쟁과 입시가 폭력을 부추겨도 부모가 아이를 진정으로 성적표보다 아낀다면 비극은 훨씬 덜할 것이다.


몇 해 전 아이가 고등학교 올라갈 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설 상담소를 찾았던 기억이 떠오른다. 집중상담과 한방처방을 결합해 성가를 날리던 곳인데, 스트레스 진단기의 전기자극에 대한 반응도가 중학생은 평균 70으로 떨어지고 고등학생은 50 이하로 내려가는 아이들이 많을 정도로 주눅이 들어 있다고 했다. 만성적인 수면부족, 두통, 소화불량 등으로 자율신경계의 반응이 떨어지고 그 결과 아이들이 무기력해진다. 가장 큰 원인은 물론 이기기 위한 교육, 곧 오로지 남보다 우수한 성적을 내도록 몰아붙이는 ‘학습 폭력’ 탓이다. 집에서 학업 스트레스를 거의 주지 않았던 우리 아이는 반응도가 100으로 드물게 정상으로 나왔다. 그 뒤로 성적을 묻거나 따지지 않았으며 그 선택은 지금도 후회하지 않는다. 실제로 주변을 보면 아이가 부모 욕심대로 되는 경우는 드물지만, 학업 스트레스로 의욕과 자신감을 잃거나 마음의 상처를 깊게 입어 결과적으로 더 큰 것을 놓치는 사례를 종종 보게 된다.


현실적으로 입시에 투자한 비용 대비 효과는 과거 성장시대에 훨씬 못 미치고 불확실하다. 학교교육은 능사가 아니며 대졸 신입사원이 대기업 임원이 될 확률은 0.6%밖에 안 된다. 10년 전 공부 말고 구원받을 수 있는 건 없으니 목숨 걸고 해보라고 외쳤던 메가스터디의 손주은 회장은 “목숨 걸고 공부해도 소용없어요. 신자유주의 시대에 기득권층 뒷다리 잡고 편하게 살자는 발버둥에 불과해요”라고 한다. 그는 대학 잘 가는 건 경쟁력 요소의 하나일 뿐 그리 큰 경쟁력은 아니라며 오히려 깽판도 좀 칠 수 있는 아이들한테 미래가 있지 않을까 한다고 덧붙인다.


“그런데 우리는 왜 여기(동물원)에 있지” 하고 어미 낙타가 새끼 낙타에게 물었으면 한다.



정영무 논설위원
young@hani.co.kr


 

Posted by 無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