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여름 명박산성의 모습입니다. 제가 찍은건 아니죠]
"今臣戰船尙有十二隻 出死力拒戰 則猶可爲也."(금/신/전선상유십이척//출/사력/거전//즉/유/가위/야)
"신에게는 아직도 열두 척의 전선이 남아있사오니, 나아가 죽기로서 막아 싸운다면 능히 해낼 수 있을 것입니다."
※ 尙 : 오히려 상 / 猶 : 오히려 유 / 拒 : 막을 거
친절하게.. 옥편노릇까지^^;;;
어때요?? 한자를 읽어도 이해할 수 있겠죠??
충무공의 전기나 해전사를 읽을 때면.. 언제나 마음 아프게 다가오는 말이고..
때로는 남몰래 눈물을 닦기도 했던 대목입니다..
임진왜란 7년간 이루어진 해전 진행을 따라가지 않고.. 느닷없이 위 문장을 읽으면..
전부터.. 자주 들어왔던 상투적인 말로밖에는 안들리겠죠.
하지만.. 1597년..
그러니까.. 임란 전 약 2년, 임란 발발 후 약 5년간을 갈고 닦아오던 최강의 함대와, 생사를 같이 했던 2만여 장병들이
잠깐 사이에.. 모두 바다에 떠다니는 나무 조각과 시체들로 변했던 그해 여름의 어느날...
그 끔찍했던 순간을 잔해를 통해 확인하면서.. 어느 지휘관의 마음이 찢어지지 않았겠습니까...
오늘 신림동에 오는.. 전철에서 임진왜란 해전사를 읽었습니다..
5년의 전란.. 사방에 가득 널린 시체와 그 타는 냄새.. 피난 가서 연락도 하기 어려운 임금..
망망대해에 오직 전라좌수영과 우수영의 함대밖에는 남지 않은 고립무원도 견디기 어려웠을 것인데..
이젠.. 그나마 남은 함대도 전멸하고.. 부서진 판옥선 12척만 덩그러니 남아있을 때..
그 12척으로 남해안에 바글바글하는 왜군과 전투를 벌일 생각을 했을 때..
충무공은 얼마나 기가막혔을까요...
당시에는 왜군의 거의 전 병력이 경상남도 남부에 집결해 있을 때라서..
총 16만여명의 적과 맞서 싸울 각오를 해야 했습니다..
그 중에는 육군도 있으니 빼야한다고 생각하시겠죠??
하지만.. 당시 왜군은 육군과 수군의 구별이 없었습니다. 배를 타면 수군, 땅에 서면 육군..
그런 샘이었죠.
그에 비하면.. 비록 양신역천일망정 조선은 육군과 수군이 엄격히 구별되어있었으니..
이미 전문성에서 앞서고 있었다고 할 수도 있기는 하겠습니다.
난중일기 곳곳에는 충무공이 눈물을 흘렸다는 기사가 보입니다..
하지만.. 12척만을 거느리고 133척과 맞서러 나아갈 때..
충무공께서는 눈물을 흘리지 않습니다..
오직.. 죽고자 하면 살 것이라는 손자의 말을 병사들에게 다짐 시키고 있죠...
왜.. 이 글을 쓰냐구??
그냥...
405년 전... 임진왜란이 끝나기 2년 전....
정말 기가막혀서 말도 안나오는 상황에 처해있던..
하지만.. 맞서서 그 격랑을 해쳐야만 하는 숙명을 지녔던..
그 기막힌 사내가 갑지기 떠올랐을 뿐입니다.
# 2002년 12월 23일 제 카페 서른사춘기(http://cafe.daum.net/fourspring/)에 적었던 글입니다.
오늘은 .. 옛 글들을 추억하는 날 인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