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과 법2009. 12. 21. 15:20


1. 영국의 임금관련 법제도의 특징

영국의 노사관계는 흔히 자유주의 내지 자발적 행동주의라 번역될 수 있는 ‘voluntarism’이라는 용어로 표현된다. 노사관계에서의 ‘voluntarism’은 더욱 정확히 표현하자면 “법을 통한 간섭의 자제”라는 의미라고 보는 것이 이해에 더욱 용이하다(박은정, ‘’영국의 부당노동행위제도‘, 「노동법학」 제19호, 2004. 12, 410쪽 이하). 영국 노동법의 이러한 전통은 임금법제에서도 그대로 반영되어 최근까지 임금은 전적으로 노동조합과 사용자 사이의 단체협약을 통해 결정되어 왔다. 영국은 산업혁명이 태동한 나라로 산업혁명기 영국의 노동환경은 극단적인 저임금과 생명을 위협하는 노동강도로 대변될 수 있는 처참한 환경이었다. 이러한 노동상황은 ‘voluntarism’이라는 원칙을 배경으로 방치되었고, 노동조합을 통한 단결과 저항이 저임금과 극한의 노동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오랜 세월에 걸쳐 합법성과 자주성을 획득한 노동조합이 마침내 사용자와 교섭하여 조합원의 임금 및 근로조건을 결정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이러한 영국 노사관계의 토양에서 임금 및 근로조건을 법률이 아닌 노동조합이 체결하는 단체협약으로 결정하는 것은 매우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국가가 법률을 제정하여 개입하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지 못한 것으로 받아들여졌고,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정부의 불개입도 ‘voluntarism’으로 설명되고 있다. 여기에는 영국이 전통적 불문법 국가라는 것도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 영국의 경제위기와 함께 ‘voluntarism’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었고, 1970년대 보수당의 집권 이후 노사관계를 규율하기 위한 각종 법률들이 제정되었다(김영환, 앞의 책, 3쪽 이하). 이러한 경향은 임금관련 법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여전히 ‘voluntarism’은 영국의 노사관계 및 노동법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특징이자 가치이다. 그것은 1970년대 이후 최근에 이르기까지 많은 법률들이 제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임금에 대한 국가적 규율은 EU의 조약과 지침 등을 제외하면, 1970년의 동일임금법(Equal Pay Act), 1996년의 고용권리법(Employment Rights Act), 1998년부터 시행된 국가최저임금법 등에 불과하며(Stephen Hardy, 'Great Britain', '「Encyclopaedia Labour Law」, KLUWER LAW, 2007, 132쪽) 나머지 영역은 많은 부분이 단체협약 또는 common law에 의해 규율되고 있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전통적으로 단체협약에 의해 규율되어 오던 영국의 임금결정 구조는 최근 들어 매우 중요한 변화를 겪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Stephen Hardy, 앞의 글132쪽 이하). 1990년대 들어 단체협약의 전반적인 침체와 노동조합 및 단체협약의 분권화로 인해 단체협약의 적용을 받는 근로자의 비율이 현저하게 낮아진 것이다(James Arrowsmith, '영국 임금교섭의 변화‘, 「국제노동브리프」, 2005. 6, 12쪽 이하). 단체협약을 통해 결정된 임금의 적용을 받는 근로자의 비율이 1984년에는 60%에 이르렀으나, 1998년에는 29%로 줄어들었다는 사실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공공부문에서는 단체협약의 적용을 통해 임금이 결정되는 비율이 2003년도에도 여전히 52%에 이르고 있지만, 이것도 1984년의 94%에 비하면 매우 큰 폭으로 낮아진 것임을 알 수 있다. 단체협약 체제에 의해 결정되고 규율되었던 임금체계의 적용을 받는 근로자의 수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은 임금이 더 이상 단체교섭과 협약을 통한 집단적 규율의 방식으로 결정되지 않고, 개별 근로자와 사용자 사이의 계약에 의해 결정되거나, 물가상승률을 비롯한 경제환경의 변화에 따라 변동되는 성과급의 폭이 커지는 등의 변화를 겪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2. 노사관계에 있어서 우리나라와 영국의 차이

영국의 노동조합의 역사와 노동자의 권리 획득의 역사는 아무 것도 없고, 아무 것도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스스로 모든 것을 만들어내고 정착시켜 나간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에 비하여 우리나라 노동법 및 노사관계의 역사는 우리가 이미 경험하기 이전에 서구의 경험을 차용한 선험적인 법률이 먼저 규율한 내용을 따라가는 모양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매우 근본적인 차이를 만들어냈다.

영국은 공업화 과정에서 길드 체제가 무너지고 공장노동이 일반화 되면서 숙련직 계층이 무너지고 농민들이 경작지에서 추방되는 사태를 겪으며, 그들이 저임금 장시간 고밀도 노동의 공장 직공으로 전락하는 과정을 겪었지만, 우리나라는 본격적인 공업화 과정을 겪기 훨씬 이전인 1953년에 이미 근대적인 헌법상 노동3권과, 근로기준법, 노동조합법, 노동쟁의조정법의 기본3법 체제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살인적 여성노동과 아동노동의 문제, 극단적인 종속성에서 초래되는 강제노동의 문제 등의 경험이 초창기 영국에서와 같이 본격적이고 치명적이지는 않았다. 우리는 공업화에 앞서 이미 단체교섭권이 헌법으로 보장되어 있었으며(김영환, 「영국의 임금수준 결정구조」, 한국노동연구원, 1997, 46쪽), 임금과 관련한 근로자들의 권리와 주장을 하나씩 관철해 나가는 과정을 겪기 이전에 이미 그것이 근로기준법에 규정되어 있었다. 따라서 영국에서는 임금에 관한 모든 사항이 단체교섭을 통해 결정되는 구조인 반면, 우리나라는 근로기준법상 임금체계를 전제로 하여, 소극적으로 임금의 액수와 인상률, 임금 이외의 각종 수당의 신설 및 폐지 정도가 교섭을 통해 결정되고 있을 뿐이다.


Posted by 無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