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과 법2009. 12. 12. 23:33


  현행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부칙 제5조는 2010년 1월 1일에 사업 또는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 설립을 전면 허용하는 것으로 예정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노․사․정은 단체교섭창구 단일화를 의무화할 것인지, 교섭창구를 단일화 한다면 어떠한 방법으로 할 것인지 여부를 두고 여전히 공방을 벌이고 있다. 12월 4일에 노동부와 한국노총, 한국경총이 밀실합의를 한 이후에도 이 문제에 대한 공방은 여전하다. 노동부가 새로운 3단계 단일화 방안(자율단일화>과반수노조대표>자율적 교섭단 구성)을 들고 나왔다는 것을 빼면, 노동계는 단일화를 부인하고, 경영계는 다수대표제를 주장하고 있는 구도에는 변함이 없다.

  그러나 단체교섭창구 단일화에 대한 논쟁은 단일화의 방법에 치중되어 있고, 과연 교섭창구를 단일화 하는 것이 타당한가 하는 단체교섭창구 단일화 자체의 정당성 문제에 대해서는 논의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단체교섭이라는 기본권 행사에 있어서 교섭창구를 단일화 하라는, 즉 대표가 되지 못한 자에 대해서는 기본권의 행사를 포기하라는 요구가 현행 헌법과 노동법 체계 내에서 가능한 것인가에 대한 논쟁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채 기술적인 부분만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의문인 동시에 유감이다. 

  단체교섭창구 단일화에 대한 논란을 자세히 살펴보면 사업장 내 노사관계의 혼란이나 노동조합 사이의 또는 노동조합과 사용자 사이의 갈등이 우려된다는 문제제기만 되풀이 되며 제기되고 있을 뿐, 헌법상 “근로자”에게 보장된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의 제한 내지 침해 문제는 소흘히 다루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즉 초보적인 경제논리가 기본권과 법적 권리의 문제를 압도하고 있는 형국이다. 절차의 간편함과 제도 운용의 효율성을 말하기 이전에 만들고자 하는 제도의 타당성이나 근거가 법질서 전체의 관점에서 검토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헌법상 부여된 단체교섭권을 강제로 위임하도록 하는 법정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는 단체교섭권의 법적성질에 대한 논의로부터 정당성 검토가 시작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그리고 단체교섭권의 법적성질은 독자적으로 논의되기 보다는 단체협약의 법적성질 문제와 결부되어 판단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영희, ‘단체교섭권의 법적성질과 문제’, 「노동법과 현대법의 제문제(심태식박사화갑기념)」, 1983, 42쪽 이하)에서, 단체교섭창구 단일화는 필연적으로 단체협약의 통합을 가져온다는 점에서 단체협약의 본질론이 그 논의의 첫 단계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검토는 단체협약 체결권을 행사하게 될 복수노조 하에서의 교섭대표노조 또는 교섭대표단이 갖는 대표권의 정당성 기초에 대한 논의가 될 수도 있다.

  우선 단체협약이 협약체결 당사자 사이의 계약 해당한다고 보는 제3자를 위한 계약설, 대리설, 단체설, 집단적 규범계약설 등에 따를 경우 과반수대표제에 따라 단체교섭창구를 단일화 하도록 법률로써 강제하는 것은 법률에 의해 자유롭게 계약을 체결할 수 있는 권리를 제한하는 것이 된다. 현재 민법상 전형계약 중에는 반드시 대표를 뽑아야만 계약을 체결할 수 있는 다수당사자 사이의 법률관계가 예정되어 있지는 않은 것으로 보이고 사인간의 계약 체결을 과반수대표제에 의해 법률로 제한하는 사례를 발견하기도 쉽지 않다(미국식 배타적교섭대표제도는 조합원만이 아닌 전체 근로자의 대표를 뽑는 절차이므로 이러한 문제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다). 우리 헌법은 제37조 제2항에서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개별 기업단위의 단체교섭 문제가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의 문제라고 볼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또한 제한하는 경우에도 본질적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고 하고 있는데 계약 당사자 일방의 계약 내용 결정의 자유가 완전히 배제되는 것을 본질적 내용의 침해가 없다고 볼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따라서 단체협약의 법적성질에 관하여 계약설을 따를 경우 과반수대표제에 의한 단체교섭창구 단일화는 논리적으로 허용될 수 없다. 다만 비례대표제나 공동교섭단 구성을 통한 교섭창구 단일화는 계약의 자유 침해의 정도가 완전한 배제에 이르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허용될 수 있는 여지는 있을 것으로 본다.

  다음으로 단체협약을 법규범으로 보는 견해에 따를 경우 교섭창구 단일화를 강제하는 것이 허용되는가 하는 것을 검토하려고 한다. 수권의 의미에 대한 차이를 일단 부각시키지 않고 형성되어 있는 단체협약의 법규범에 해당한다고 볼 것인가에 대해서만 헌법수권설과 법률수권설이 있다는 전제로 설명해본다. 우선 헌법수권설에 의할 경우 헌법 제33조에 의해 직접 근로자에게 부여되어 있는 단체교섭권을 근로자 자신이 선택한 노동조합이 아닌 다른 노동조합이 행사할 수 있도록 법률로 강제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 단체협약 체결 문제가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의 문제라고 보기 어렵다는 점은 계약설에 대한 부분에서 설명한 바와 마찬가지이며, 여기에 더하여 헌법상 직접 부여된 권한 행사를 법률로써 배제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법률수권설에 의할 경우 당사자의 자치입법권이 법률에 의해 부여된 것으로 볼 수 있으므로(지방자치법 제22조는 “지방자치단체는 법령의 범위 안에서 그 사무에 관하여 조례를 제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법률로 그러한 자치입법권을 제한하는 것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 경우에도 단체협약 체결 문제가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의 문제라고 볼 수 있는지,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는 기준을 충족시킬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이승욱, ‘복수노조와 교섭창구단일화’, 「법과 노동의 소통Ⅲ」(서울대 노동법연구회 2009년, 가을학술발표회), 2009, 13쪽은 심지어 단체교섭창구 단일화의 의미는 단체교섭‘권’을 단일화시켜 행사하여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까지 설명하고 있는데 이러한 견해의 배경이나 논리적 근거는 납득하기 어렵다).

  결론적으로 현재 우리나라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소위 단체교섭창구 단일화 방안은 단체교섭권 및 단체협약의 본질을 중요시하는 관점에서 볼 때 인정하기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노동조합이 조직된 근로자의 대표조직으로서 헌법상 근거에 따라 행사하는 단체교섭권을 창구를 단일화하여 행사하라고 할 수 있다는 발상을 떠올린 것부터가 사실 놀라운 발상이다. 이탈리아의 RSU 같은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외국에 그러한 예가 있다고 그것이 당연히 우리나라에서도 인정될 수 있다고 볼 수는 없는 것 아니겠는가.


# 2009년 11월 1일, 대학원에서 발표한 발제문을 일부 수정했습니다.


Posted by 無逸
노동과 법2009. 12. 10. 16:47



  보통 단체협약의 법적성질 문제에 대해 설명할 때 논의의 대상이 되는 부분을 규범적 부분에 한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단체협약을 규범적 부분과 채무적 부분으로 나누면서 규범적 부분에 대해서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하 ‘노조법’) 제33조에 의해 제1항의 강행적 효력과 제2항의 직접적 효력 즉 규범적 효력이 인정되고 있고, 채무적 부분은 사용자와 노동조합 사이의 관계에 관한 부분으로서 협약 당사자 사이에 계약으로서의 효력이 인정된다고 보면서 단체협약의 규범적 효력이 인정된다고 보는 규범적 부분에 국한해서 단체협약의 법적성질 논의를 진행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에 대해서는 단체협약은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체제 유지적 보편적 가치를 가지고 있는 단결권의 실현의 결과물로서 가치적, 이념적 평가가 요구된다고 하면서 단체협약은 곧 법규범으로 인식되어야 하고, 법규범으로 인식되는 한 단체협약의 규범적 효력은 채무적 부분에 대해서도 인정되어야 한다(유혜경, ‘단체협약법의 이론적 기초에 관한 연구’, 「노동법학」 제24호, 2007, 82쪽 이하)고 보는 반론이 있다. 이 견해에 따를 경우 단체협약의 법적성질론의 논의 대상은 규범적 부분, 채무적 부분을 막론하고 단체협약 전체가 된다.

  지배적인 견해가 단체협약을 규범적 부분과 채무적 부분으로 나누어 규범적 부분에 대해 단체협약의 법적성질 논의를 집중하는 것은, 단체협약 중 협약 당사자 사이의 문제들에 대하여 정한 부분이 단체협약 체결 당사자에게 직접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은 굳이 별도의 이론을 구성하지 않고 ‘당사자 사이의 합의’로만 보아도 쉽게 설명이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협약체결 당사자가 아닌 개별 조합원인 근로자나 사용자단체에 속한 사용자가 단체협약의 직접적․강행적 효력의 규율 내에 들어가게 되는 것에 대하여는 특별한 이론구성이 필요했다. Lotmar 교수나 Sinzheimer 교수 등이 독일의 단체협약령 이전에 단체협약의 규범적 효력을 인정하기 위해 대리설과 단체설 등을 주장할 때 규범적 효력이 인정되는 것으로 보기 위해 이론구성을 시도한 영역도 협약 당사자가 아닌 조합원인 근로자와 개별 사용자에게 영향을 미치는 부분이었다.

  그러나 규범적 부분과 채무적 부분을 구별 짓게 되는 것이 규범적 효력을 인정하기 위한 이론구성이 필요한 부분인가 아닌가 하는 것에 있다면 모르되, 이미 하나의 단체협약으로 형성된 이후에도 적용상 효력에 있어서 단체협약의 각 부분이 차이를 가진다고 보는 것은 의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노조법 제33조를 근거로 “근로조건 기타 근로자의 대우에 관하여 정한 부분”을 규범적 부분이라고 보고 있다(김유성, 「노동법Ⅱ」, 1998, 166쪽; 김형배, 「노동법」, 2009, 제759쪽). 한편 독일 단체협약법(Tarifvertragsgesetz) 제1조 제1항과 제4조 제1항에 따르면 단체협약 중 “근로관계의 내용, 체결, 종료와 경영상 및 경영조직법상의 문제를 규율(ordnen)하는 부분”이 법규범(Rechtsnormen)에 해당한다고 하면서 규범적 효력을 인정하고 있다. 즉 독일에서는 “근로조건 기타 근로자의 대우에 관하여 정한 부분” 뿐만 아니라 경영상 및 경영조직법상의 문제를 규율하는 부분도 규범적 부분으로 인정되고 있다(Brox/Rüther/Henssler, 「Arbeitsrecht」, 2004, 222쪽 이하). 단체협약의 내용 중 법률이 명시적으로 기준의 효력을 부여한 부분을 규범적 부분이라고 볼 때, 각 나라의 법률이 규정하는 규범적 부분의 영역이 늘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입법정책정인 관점에 따라 좌우되는 문제인 것이다. 그리고 뒤에 설명하겠지만 독일에서의 이와 같은 규정의 최초 입법 취지는 협약 당사자가 아닌 조합원과 사용자에 대하여 단체협약이 직접적 효력과 강행적 효력을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따라서 입법의 목적은 규범적 효력을 이론적으로 논증하기 어려운 부분에 대한 근거지움에 있을 뿐 그 이외의 부분이 규범적 효력을 가질 수 없다고 밝히기 위한 의도를 가진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단체협약의 규범적 효력을 인정함에 있어서는 채무적 부분을 규범적 부분과 다르게 취급해야할 필연적 근거는 없다고 생각된다. 헌법 제33조에 의해 근로자의 헌법상 권리로 인정된 단체교섭권의 행사를 통해 만들어진 결과물인 단체협약에 대하여 특별한 근거 없이 특정부분의 효력을 다른 부분의 효력보다 아래에 있는 것으로 판단하는 것은 타당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단체협약의 규범적 효력을 규정한 독일 단체협약법이나 우리 노조법 규정이 소위 규범적 부분을 지정하여 규범적 효력을 인정한 것은 나머지 부분에 대하여 계약적 효력만 인정하면 된다는 취지가 아니라 해석적 방법만으로 규범적 효력을 인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법률로 규정하는 방법을 택한 것일 뿐이라는 것을 인정한다면, 협약체결 당사자 간에 자치적으로 합의하여 규범으로 삼은 부분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생길 이유가 없는 채무적 부분에 대하여 규범적 효력을 부인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단체협약의 규범적 효력이 “근로조건 기타 근로자의 대우에 관한 사항”에 대해서만 한정적으로 인정된다는 통설적 주장은 타당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소위 채무적 부분은 취업규칙이나 근로계약 등과 저촉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

  다시 말하면 단체협약의 모든 부분은 규범적 부분인지 채무적 부분인지 나눌 필요 없이 전체가 모두 당사자의 사적자치에 의해 형성된 부분사회에 적용되는 자치규범으로서 파악되어야 하며, 그 효력도 단체협약의 모든 규정이 원칙적으로 동일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 대학원 세미나 발제문에 썼던 내용..
더 다듬어져야겠지..



Posted by 無逸